top of page

07
18

summer,
love.

なぜか君と歩きたかった海辺。

20210718 나기이바 합작

Oversweetness

w. 빵토

문제의 그날로부터 일주일째, 사에구사 이바라의 미간은 아직도 펴질 기미가 안 보였다. 평소에는 작위적일 정도로 생글생글 웃고 다니던 그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일하는 기계라도 된 것마냥 그저 묵묵히 쌓인 업무를 처리하기만 했다. 행동은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이 모습을 본 코즈믹 프로덕션의 모두는 하나같이 입을 모아 역시 어린 나이에 부소장 자리까지 꿰찬 덴 이유가 있다며 혀를 내두르기 바빴다. 딱, Eden의 멤버들만 제외하고 말이다. 

 

사건 발생은 일주일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그날도 이바라는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늘 그래왔듯 각하께서 뜬금없이 ...사랑해, 이바라. 라든지 ...응, 귀여워. 같은 말씀을 곧잘 하시곤 했지만, 이는 은근슬쩍 다른 대화 주제로 돌린다거나 적절히 맞장구쳐주면 무난히 넘길 수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각하께서 어째서 그런 말씀을 자신에게? 하는 의문도 가졌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로버트 그린의 The Art of Seduction 과 비슷한 책이라도 감명 깊게 읽으신 걸까 하며 넘기기 일쑤였다. 누군가는 매일같이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각하와 그에 반해 덤덤한 자신을 보며 어떻게 같은 유닛의 멤버와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일 수 있냐며 이상한 눈초리로 볼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모든 고백은 진심일 리가 없고, 진심이어서도 안 되는 말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자신은 아무렇지 않았다. 만일 각하께서 자신을 진정 사랑한다 쳐도, 상상만으로도 모든 일이 꼬이는 것 같아 머리가 지끈거렸다. 평생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편이 현재로서는 가장 최선이었기에 최대한 생각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날만은 달랐다. 사랑을 고백하는 각하의 눈동자가 평소보다 사뭇 진지해 보였다. 

 

"...사랑해, 이바라."

 

이바라는 그 순간 제 안의 무언가가 쿵 하고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그 오묘한 눈동자에 압도된 탓일까, 늘 하던대로 말하면 되는데 이상하게도 입이 딱 달라붙어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매일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던 자신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내면의 목소리가 언제까지고 외면하기만 하면 그만일 줄 알았어? 하고 물어오는 기분이었다. 멀쩡한 척 웃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잔뜩 혼란스러워하는 자신이 그 눈동자 안에 훤히 비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잠깐의 정적 후,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바로….

 

"...예?"

 

겨우 이 한 마디였다. 자신이 봐도 정말 답이 없다 싶었다. 차라리 평소처럼 무시하면 될 것을, 당황한 티를 죄다 내버린 자신이 너무 머저리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Fucking son of bitch! 자신이 이토록 멍청해 보이는 실책을 범하다니요!  자괴감에 빠져 돌처럼 굳어버린 자신을 한참 물끄러미 쳐다보던 나기사는 이내 발걸음을 옮겨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나갔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놀랍게도 다음날 마주친 나기사는 낮에 있던 일을 떠올려 보며 깊은 자괴감과 고민에 빠져있던 지난 새벽이 무색할 정도로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어제 일 이후로 매일같이 달라붙어올 것이라 예상하고 짜둔 이바라의 계획이 전부 수포로 돌아갔다. 마치 자신이 어젯밤 꿈이라도 꾼 것 같은 반응이었다. 오늘 덤덤해야 할 건 분명 자신이었는데, 억울해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정말로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나기사를 볼 때마다 이바라의 마음속은 점점 더 심란해져 갔다.

 

각하께서는 어째서 자신에게 그런 말씀을?

아니,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감정을....

아예 처음부터였나? 그럴 리가.....

아니, 어제 본 눈빛도 실은 그저 자신의 착각이었다면?

각하께서 자신을 좋아할 이유가 있던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졌다. 혼자 사무실에 앉아 고민하다 정신을 차려 보면 입술에서 피가 나고 있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날이 가면 갈수록 어두워지는 그의 낯빛과 입술에서 떨어질 기미가 없어 보이는 피딱지들을 본 나기사는 히요리를 찾아갔다. 그에게 여태껏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 나기사는 꽤 울적해 보였다.

 

"...사랑은 아직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이바라가 힘든 모습을 더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

"...내가 가진 감정을 상대에게 전하는 건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일인 걸까."

"...이것들이 이바라를 힘들게 한다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이 말을 묵묵히 옆에서 듣고 있던 히요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왜 독사가 죽어가는 몰골이 되었는지 알 것 같네.... 그렇다고 나기사에게 속마음을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기에 울적한 표정을 하고 있는 그를 꼬옥 안아주며 달래곤, 나기사 몰래 휴대폰을 들어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문자 메시지의 수신인은 쥰이었고, 요즘 이바라의 상태가 나쁜 것 같으니 쥰군이 가서 알아 오라는 내용이었다.

 

쥰은 갑작스러운 문자에 머리를 긁적이긴 했지만, 마침 회사에 볼일이 있기도 했기에 금방 이바라의 사무실로 향했다. 벌컥. 부소장실의 문이 열렸다. 간만에 보는 이바라는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본 모습 중에 가장 초췌해 보이는 얼굴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이바라, 혹시 요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당신 얼굴이 말이 아닌데요...."

"노크도 안 하고 불쑥 들어와선 하는 말이 겨우 그거였나요, 쥰!"

"단지 밀린 업무가 많았을 뿐입니다. 사소한 걱정 하나 때문에 저를 찾아올 정도로 한가한가 보군요. 보시다시피 저는 아무 문제 없으니, 한가하신 쥰은 이럴 시간에 연습실에 가서 춤 연습이라도 하시길!"

"아니, 이바라. 지금 당신은 누가 봐도 멀쩡하지 않다고요~?"

 

쥰이 더 말하려 하자 이바라는 그를 사무실 밖으로 밀어내고 문을 닫아버렸다. 이쯤 되니 어지간해선 이바라를 신경 쓰지 않는 아기씨가 왜 먼저 얘기를 꺼냈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는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우선 히요리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누군가와 함께 있었던 듯한 흔적이 보였다.

 

"아기씨, 저 왔슴다. 어라, 근데 누가 왔다 간 건가요?"

"응응, 방금까지 나기사 군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네. ☆

그나저나 쥰쿤, 이유는 알아 왔어?"

"으음, 그게 말이죠.... 이바라가 도통 얘기해 줄 생각이 없어 보이던데요. 

괜히 갔다가 춤 연습이나 하라는 호통만 듣고 돌아왔다고요~?"

"아하하! 쥰쿤의 춤 실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니까 말이네!"

"내가 아까 나기사 군과 대화를 하며 알게 된 게 하나 있는데, 아무래도 나기사 군이 이바라를 좋아하는 것 같네."

"엑?! 나기 선배가요?"

 

이후 Eve의 이바라 회생시키기 대작전에 대한 계획 세우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애초에 히요리와 쥰 둘부터가 이 상황에 대해 가진 생각이 달랐기에 의견은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길고 긴 대화 끝에 내린 결론은, 이바라에게 약간의 도움만 주자는 것이었다. 이튿날 복도에서 이바라를 마주친 Eve는, 히요리는 대뜸 이바라를 불러세웠다.

 

"독사!"

"예, 전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잠깐 가까이 와보라는 거네!"

 

히요리의 말에 의아해하던 이바라는 우선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러자 히요리가 이바라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요즘 매일 시도 때도 없이 누군가가 생각나지 않아? 그걸 바로 사랑이라고 부르는 거라네, 독사."

"...예? 갑자기요?"

 

벙찐 자신을 보곤 싱긋 웃어준 히요리는 쥰을 데리고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났다. 

 

생전 안 하던 머저리 같은 짓을 이번 주에만 벌써 두 번이나 하다니. 바보 같은 반응을 해버린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뜬금없는 헛소리로 치부하기엔 전하가 말한 상태가 지금의 자신과 같아 말문이 막혔다. 요즘 왜 이렇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하나같이 의문투성이인지…. 골이 울리는 이바라였다.

 

사실 그날 이후로 각하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건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대체 왜? 하는 의문들이 주를 이뤘으나, 나중에는 Eden 관련 회의 중 스크린에 띄워진 각하의 얼굴만 봐도 좋아해, 이바라 라고 말하는 각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심지어 샤워할 때조차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자신에게 덕지덕지 붙은 감정들을 물로 씻어내려 아무리 애를 써봐도, 어딜 가든 늘 남아있는 장마철의 축축한 습기처럼 도통 사라지질 않았다. 각하와 관련된 일련의 생각들은 이상할 정도로 벗어나려 발버둥치면 칠수록 숨통을 조여오는 쥐덫처럼 점점 더 끈질기게 달라붙어왔다. 

 

낮에는 이런 생각들을 떨치려 평소보다 배로 일했고, 야근이 끝난 후 씻자마자 기절하듯 잠든 지도 어언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중이었다. 솔직히 쥰에게는 아닌 척 굴긴 했지만, 자신이 보기에도 꽤나 심각한 몰골이라는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는 별다른 묘책이 없었다. 처음 받아 보는 순수한 애정은 당혹스럽기만 했다. 제게 사랑이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그깟 사소한 감정놀음 하나 때문에 무너지는 사람들을 숱하게 봐왔고, 그런 그들을 밟고 올라선 자신이었다. 어떻게 쌓아올린 성과인데, 겨우 감정 하나 때문에 이 모든 걸 무너뜨릴 자신을 상상하면 끔찍했다. 그런 와중에도 제가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아이로 태어났다면 저 애정에 순수한 애정으로 화답해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사랑을 하면, 버러지 같은 인생이 좀 나아지기라도 한답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마음속에서 분노가 들끓었다. 하지만 화가 났다가도 그의 눈동자를 떠올리면 어딘가 모르게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습기가 가득 찬 욕실이라 그런 것이라 치부하고 싶었지만, 마음이 미세하게나마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자신이 미친 게 분명했다. 이 사에구사 이바라에게 사랑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저 각하의 분위기에 휩쓸린 것이리라 생각하곤 서둘러 샤워를 마무리하곤 자리에 누웠다. 자려는 와중에도 떠오르는 누구 덕에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이바라는 머릿속으로 욕설을 잔뜩 하다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말 그대로 온종일 각하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네 시간이나 흘렀을까, 잠에서 깬 이바라는 또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도 할 일이 산더미였다. 집을 나서자마자 내리쬐는 햇빛에 일순간 시야가 흐려지더니 몸이 휘청거렸다. 슬슬 몸이 못 견디는 것 같았다. 쯧. 벌써 한계라니, 저도 많이 나약해졌군요. 가볍게 혀를 찬 그는 그대로 사무소로 향했다. 그의 성격상 오늘 해야 할 일까지 제치고 병원에 갈 수는 없었기에, 불필요한 일들만 제외하고 최대한 일찍 귀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소장실에 들어서고, 망부석처럼 자리에 앉아 업무만 하다 화면 오른쪽 아래를 보니 슬슬 점심시간인 것 같았다. 중요한 일은 방금 얼추 마무리해뒀으니, 잠시 숨돌릴 시간도 있었다. 이바라는 의자를 뒤로 쭉 뺀 채 문을 바라보며 눈을 슬며시 감았다. 그리곤 간만에 찾아온 여유를 만끽했다. 하지만 또 그새를 못 참고 각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바라'

 

내가 진짜 미치기라도 했나. 이제 환청이 대놓고 들리네.

 

'...이바라?'

 

계속해서 생생하게 들려오는 나기사의 목소리에 어이가 없어진 이바라는 기함하며 눈을 떴다. 그런 그의 눈앞에 보이는 건 익숙한 문이 아닌, 란 나기사였다. 잘못 보고 있는 건가 싶어 눈을 감았다 떠 보았지만,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각하는 그대로였다.

 

"..."

".."

 

잠시 적막이 흘렀다. 째깍째깍 하는 시계 소리만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각하! 어쩐 일로 여기까지…"

 

금세 정신을 차리곤 벌떡 일어나 평소처럼 활짝 웃으며 나기사에게 인사하려던 이바라는 말도 채 끝마치지 못한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 눈앞이 흐릿해지다 못해 온통 새카매지고 몸에서 힘이 풀렸다. 이를 본 나기사가 급히 다가가 쓰러지는 이바라를 받아냈다. 기절한 이바라를 안아 든 나기사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렸다. 그러던 도중 멀리서 다가오는 Eve를 마주쳤다. 상황을 눈치채고 달려가 엘리베이터를 잡아준 쥰 덕분에 넷 다 빠르게 엘리베이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나기사의 목덜미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히요리는 그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쥰이 무슨 말이라도 꺼내려던 차에, 1층에 도착해 안내 음성이 나왔다.

 

1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나기사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쫓아 히요리와 쥰도 달렸다. 다행히도 의무실이 멀지 않아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고, 나기사는 품에 소중히 안고 온 이바라를 침대에 조심조심 눕혔다. 그리곤 그제서야 숨을 돌렸다. 기절한 이바라의 상태를 살피곤 최근 동향 등을 묻던 의사는 아마도 과로인 것 같으니, 링거를 다 맞고 푹 쉬게 하면 괜찮아질 것이라 말했다. 히요리는 조만간 일이 날 줄 알았다며 툴툴거리고 있었고, 쥰은 그런 히요리를 진정시키기 바빴다. 나기사는 아무 말 없이 이바라의 곁에 앉아 그저 손을 꼭 붙들고만 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흘렀을까, 이바라가 눈을 떴다. 그를 확인한 히요리는 쥰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쥰쿤, 아무래도 연어키슈가 먹고 싶어진 것 같은데, 오늘은 특별히 사러 가는 길에 동행해 주겠네! ☆"

"아기씨,  지금은 연어키슈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지금 내 말을 무시하는 거네? 당장 가야 하네, 당장!"

"아니, 그게 아니라...."

 

잔뜩 떼를 쓰는 히요리를 이길 수 없었던 쥰은 곤란하다는 듯 그의 손에 의해 의무실 밖으로 끌려나갔다.

 

이바라가 눈을 뜨자마자 희미하게 제 손을 붙들고 있는 사람 한 명과 그의 뒤로 보이는 천장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시끌벅적한 대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그것조차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뭉개져서 들렸다. 점점 시야가 뚜렷해지고 목소리가 선명히 들리고 나니,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이 갔다. 나기사는 제 손을 꼭 붙잡은 채 침대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아마 대화 도중 기절해버렸고, 그를 본 각하가 자신을 의무실로 데리고 온 것 같았다. 상황 파악이 끝나자마자 미처 끝내지 못한 업무가 뇌리에 스쳤다.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지금 당장 뛰어가면 얼추 제시간에 보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서둘러 가야만 일을 끝낼 수 있었기에 이바라는 나기사에게서 손을 조심스레 뺀 뒤, 몸을 일으켰다. 그때, 갑자기 무언가에 의해 자신이 잡아당겨졌다. 상대는 다름 아닌, 란 나기사였다. 그 덕에 이상하게 안긴 상태가 된 이바라였다.

 

"...각하? 주무시고 계셨던 게 아니었습니까?"

"걱정했어, 이바라."

 

또, 그 눈빛이었다. 휩쓸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눈빛. 제 몸을 혹사시키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면 무슨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입 밖으로 뱉어서는 안 될 말이었다. 

 

"겨우 저 때문에 각하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시게 해버렸습니다. 잠시 의식을 잃은 정도로 이 정도의 염려라니. 핫하하! 정말로 호화롭기 그지없는 인생이군요! ☆ 하지만 저는 보시다시피 아주 멀쩡하므로,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럼 이만, 자신은 남은 업무를 처리해야 하기에."

 

황급히 일어난 이바라는 재빨리 할 말을 쏟아낸 채,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그때, 나기사가 다가와 이바라를 뒤에서 껴안았다. 그는 자신의 어깨에 고개를 묻곤 나지막이 말했다.

 

"...미안해, 이바라. 역시 내가 이바라를 좋아하면 안 되는 거였을까."

 

그제서야 그동안 보였던 나기사의 행동들이 이해가 갔다. 오히려 자신을 배려해서 한 행동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깊게 파고들어 몸을 혹사시키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가며 어이가 없었다. 분명 안 된다고 대답해야 하는데, 그 말이 무언가에 막힌 듯 나오질 않았다. 바보처럼 보여야 정상일 사랑에 빠진 그가, 이상하리만치 사랑스러웠다. 아마도 자신과 비슷한 일주일을 보냈을 게 눈에 훤히 보여서인 것 같았다. 게다가 자신에게 부담이 될까 고민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면 조금은 귀여워 보이기까지 하는 것 같았다. 이 사람과 아주 가벼운 관계를 맺는 거라면 나쁘지 않을지도 몰랐다. 가벼운 사랑놀음 정도는 미리 연습해두면 언젠간 유용하게 쓰일지도 모르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속으로 갖은 생각을 하는 이바라의 귀가 살짝 붉어져 있었다. 그렇게 자신만 모르는 사랑을 시작한 사에구사 이바라였다.

bottom of page